[은혼/긴토키]둘째날下
시끄럽다, 시끄러워. 저 두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시선집중이 되는 건 다반사요, 지금은 하다못해 투닥투닥거리고 있는 현실에 지켜보는 사람들마저 무안하게 만드는 저 능력은 도대체 어디서 배워온 걸까. 처음에는 그저 흐뭇하게 바라보는 것으로 해피엔딩이거니 했건만 어째서 갈수록 서로 행동이 비열하게 변해가는지. 보다 못한 신파치가 무심하게 툭, 하고 두 사람의 다리에 발을 걸어 넘어뜨리곤 언제나 그렇듯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이름하여 '신파치 비기~제재 후엔 잔소리가~' 라고 부른다, 해. 아니, 누가 봐도 급조한 거잖아!)
여기 사람 많은 거 안 보이세요? 저희들 완전 민폐가 되고 있잖아요! 민폐곤 말곤 긴짱이 먼저 잘못해서 그렇다, 해. 카구라가 볼을 부풀리며 말했다. 음..파치가 뭐라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결론은 신파치의 잔소리~타임~이겠지 분명. 애초에 안경이 어떻게 말을 할 수가 있난 말이다. 하찮은 표정과 함께 하찮은 포즈로 하찮게 손가락을 콧구멍에 넣으면서 하찮게 대꾸했다. 멀쩡한 사람을 왜 안경으로 만드는 건데요! 엥, 너 안경이 본체 아니었냐? 어딜 봐서!!
오늘도 평화롭게 가긴 글렀군. 겨우 일단락된 상황을 두고서 긴토키는 그렇게 생각했다. 애초에 원인은 나였지만. 요 녀석들아, 내가 저런 코맹맹이들도 아니고 자기가 벌인 일을 발뺌하진 않는다고? 어른이라면 자기가 한 일은 떠벌릴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지. 암암, 그렇고 말고. 무언가 스스로 생각하며 만족해야는 모습을 바라보며 신파치와 카구라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지만...넘어가도록 하자.
"지금 보고 있는 독자들! 알아들었나!"
"어딜 가리키며 소리치는 거냐!"
긴짱, 허공에다가 손가락 가리키고 뭐 하는 거냐, 해. 이제 하다 하다 머리가 훼까닥 돌아버린 거냐, 해? 졸지에 카구라의 두 손바닥 사이로 얼굴이 끼인 채 고개를 젖혀진 긴토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나 중간에 입모양으로 대충 이야기의 흐름을 이해한 건지 몸을 바둥거리며 빠져나가려 애쓰는 상황에 이르렀다. 어랍쇼~! 중간에 훼까닥 같은 소리는 무엇입니까아-? 어른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 카구라. 다음날 네가 숨겨놓은 다시마 초절임이 몽땅 사라져도 괜찮을까! 뭐라? 내 다시마 초절임 가져가는 날에는 집이고 뭐고 긴짱부터 파탄 내버릴 거다, 해!
아아, 지쳤다. 또 시작된 싸움에 나오는 것은 짙은 한숨뿐. 몸속의 공기가 모두 빠져나가는 기분에 한없이 밑으로 꺼져가는 기분이 든다. 저 두 사람은 언제쯤 철이 드려나. 카구라는 그렇다 쳐도 저 마다오는 이곳 에도에서 어엿한 1명의 사무라이었다. 어떨 때는 그 누구보다 의지되는, 그런 듬직한 사람이었으나 가끔씩 자신들보다 더 어린아이 같아지기도 했다. 그래, 지금처럼. 가뜩이나 긴상의 상태도 불안한데, 그것은 아는지 모르는지 내내 저 상태라니. 신파치는 여기 있는 만큼 다운되는 기분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몸이 무거워지며 가빠지는 숨, 이...?
"아아악! 내려와 이 인간들아!!" 기분만큼은 진짜였지만 자신의 짓누르는 것은 다른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그를 더 충격적으로 몰고 갔다. 힘은 또 왜 그렇게나 센지, 조금만 늦었더라면 우두둑 소리가 아니고 딱딱한 무언가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났을 터였다. 허, 허억, 겨우 빠져나온 신파치의 얼굴이 포도만큼이나 새파랗다.
이것이 바로 죽음의 문턱에 다녀온 사람이란 말인가...그래도 포도가 더 맛있다, 해. 어느새 바닥에 쪼그려 앉은 둘은 철푸덕 널브러져 있는 그를 보며 감상평을 남기듯 한 마디씩 툭툭 던졌더랬다. 물론 그에 대한 걱정은 1도 없었지만.
어찌저찌 해결사 사무소 앞에까지 온 셋. 앞서 줄곧 있었던 자기들끼리만의 우당탕탕 소동이 있었던 것이 마치 거짓말처럼 오는 길 동안은 아무런 일도 없이 조용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 어차피 들리는 것도 없으니 소리를 지르는 말든 아무런 차이가 없었지만 역시 분위기란 게 있듯이 방금 전까진 뭔가 화기애애한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그저 평온한 그런 느낌이 피부를 타고 흘러드는 것 같았다. 아마 긴토키의 양쪽 손을 하나씩 꼬옥 붙잡고 있는 두 명의 아이 때문이겠지만. 2층으로 올라가기 전 스낵바에서 무언가를 전해 듣고(물론 긴토키는 들릴 리가 없었다. 오늘만은 그건 둘의 몫이었기에.) 드디어 문을 열고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돌아와서는 셋다 소파에 털썩 엎어질 수 있었다. 잠깐의 외출이 이렇게나 피곤했던가. 등을 대고 축 처져있는 긴토키가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역시 한쪽 감각이 없으면 나머지가 고생한다는 게 주변인들뿐만 아니라 자신도 포함되는 말이었다. 귀가 들리질 않으니 자연스럽게 몇 배는 시각과 촉각에 의지하게 된다. 줄곧 서 있는 감각에 몸은 지치고, 남들이 보기엔 그저 다 같은 동태 눈깔로 보이더라도 사실은 입모양으로 상황 파악하랴 이리저리 고생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이, 누구보고 동태 눈깔이라는 거냐."
"신파치, 내래이터처럼 독백을 읊지 마라, 해."
"저는...아니다, 말을 말자."
이 인간들은 어떻게 이럴 때만 죽이 잘 맞지...? 노답들을 보는 표정으로 체념에 가까운 말을 내뱉었다. 아무리 봐도 거기서 신파치가 독백을 했다고 하기엔 너무나 이상한 부분이 많았으나 반박하기에는 너무나 지친 불쌍한 소년이 있었다. 힘내라 신파치.
"서술자적 개입인지 뭔지 아무런 위로도 안 된다고요..."
...알았어, 이제 안 할게.
─
바깥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수도 점점 줄어들자 거리가 다소 조용해졌다. 그보다 앞서 고요가 감돌았던 해결사 사무소 안에도 여전히 적막이 감돌았다. 불이 꺼진 사무소에는 낮을 밝히는 햇빛으로 안을 비춘 채였고 한쪽 소파에는 긴토키가 점프 스페셜호를 안대삼아 얼굴에 덮은 채 누워 있었다. 옅은 숨소리가 울리는 내부는 그가 혼자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했다. 사실 오면서 서로 티격태격하다 그만 당고를 사 온다는 걸 까먹은 것을 가까스로 떠올린 세 명은 수많은 접전 끝에(가위바위보였다.) 신파치와 카구라가 다녀오는 것으로 결정되어 이렇게 또 혼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시계의 초침이 똑딱똑딱 움직이는 소리는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고, 4시가 넘어간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었다. 여전히 잠에 빠진 긴토키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세상모르게 누워 있었다. 그러나 이 적막함은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 또 다른 것을 몰고서 그에게 다가왔다.
쿵쿵, 무의식과 의식 사이에서 방황하던 그는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얼굴을 덮은 책을 책상 위에 얹어두고 그 원인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건...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린가? 잠깐 소리? 희미하지만 이건 분명 살아온 경험에 따르면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히 들어오던 소리 중 하나란 뜻이다. 어제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는 것일까? 그런 레퍼토리라면 역시 내일도...그렇군.
잠시 침묵을 지키는가 싶더니 이내 일어나서 복도로 터벅거리며 걸어가선 부서질 듯 흔들리는 문을 열었다. 기다리는 건 역시 어제 예고한 대로 찾아온 둘이었다. 뭐야, 네 녀석 있었던 거냐? 살짝 심기가 상한 듯 얼굴을 찌푸리는 히지카타와 뭔가를 관찰하듯 이상하게 조용한 오키타를 긴토키가 멍하니 바라보다 고갯짓으로 들어오라는 시늉을 하고선 방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뭐가 문젠거 같냐, 소고."
"히지카타 씨의 존재요."
도대체 언제 죽으실 생각이세요? 뭐라고 인마? 막힘없이 나오는 사심에 발끈하는가 싶다가도 지끈거리는 골에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고 말았다. 그런 히지카타의 상태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오키타는 문이 열린 복도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음...아까 시선은 잘 맞았던 거 같은데.
"아무튼 어서 들어가자고요. 혹시 모르죠, 이번엔 다른 곳이 이상해졌을지." 먼저 복도 안으로 성큼성큼 발을 디딘 오키타를 따라 사무소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왜 이제 들어오냐는 듯한 표정으로 빤히 바라보는 긴토키가 있었다. 그리곤 그가 앉아있는 반대편 자리에 앉자 눈앞에 들어온 종이와 펜 한 자루. 히지카타가 복잡한 표정으로 그것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 긴토키가 하아, 하고 크게 한숨을 토해냈다.
"본론부터 말하면, 지금은 귀가 안 들리걸랑. 아니지 지금은 아-주 조금 들리긴 하는데 하루 종일 입모양으로 대화를 따라가느라 긴상은 많이 피곤해요~ 그러니까 니들 손이 오늘은 좀 고생해달란 말씀.
인터뷰처럼 뭔가 진지하게 해 보자고. 귀먹은 사람처럼 뭐라고? 다시 말해봐! 그러니까 오오구시 군이 죽었다니까! 뭐? 오구시 군이 죽이 되었다고? 근데 오구시 군은 누구야? 같은 흐름으로 엉망이 되면 안 되니까 말이지."
"[그래도 기왕이면 죽보다는 죽는 게 나을 거 같은데요.]"
"뭐라 적은...멀쩡히 살아있는 사람 죽이지 마! 할복시켜 버린다!"
와아, 여기 경찰이란 작자가 민간인을 죽이려 드네~ 거기 또 다른 경찰 씨, 저기 날뛰는 오빠 좀 어떻게 해 주면 안 될까? 그렇다고 여기에다가 큰 거 한 방 쏠 수는 없잖아요, 라고 오키타가 종이에 빠른 속도로 적어 긴토키의 얼굴 앞에다가 내밀었다. 그건 그렇네. 어쩐지 오오구시 편을 들...어준다고 말하면 나부터 날아가겠지. 말을 속으로 삼키면서 다시 진정된 이 상황을 이어나가려 애썼다.
역시 예상대로, 하루에 감각 한 가지가 소실되는 사람은 이 주변엔 없었다. 하루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기에 카부키쵸 내로 범위가 한정되었다고 하지만 '첫 번째 피해자' 라는 이름표를 벗어버릴 수는 없었다. 아직은 겨우 이틀째. 적어도 삼일 이상을 지켜봐야 이 규칙성이 확실한지 보일 것이라는 게 대화의 결론이었으며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그저 진선조에게서 약간 관심을 더 받게 되었다는 것일까. 그저 시민1에 지나지 않는 사람에게 '호위'란 단어는 그저 허울 좋은 포장일 뿐이었다. 차라리 감시가 낫겠구만. 테이블 구석에 가득 쌓인 종이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나머지 둘은 어디 갔습니까? 아, 종이."
"빨리도 물어본다. 그 정도는 긴상도 이해할 수 있다고. 심부름 갔어, 심부름."
확실히 안 들리던 게 약간이나마 들리니까 좀 낫긴 한데 말이지.─그래도 상대방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는 아니였다.─그나마 방금 전의 대화로 멍한 정신이 좀 돌아온 참이었다. 머리가 조금 아픈 게 문제지만. 그러고 보니 신파치랑 카구라가 좀 늦는데. 시계를 올려다보니 어느새 5시를 넘은 시간에 조금 눈이 가늘어졌다. 당고 하나로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이 있던가. 어제 앞이 보이질 않아 난리를 쳤던 그날 장을 봐온 신파치가 떠올랐다. 혹시, 라는 말이 혀 끝을 맴도는 느낌에 약간의 걱정이 마음속에서 샘솟기 시작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피어오르는 불안감에 절로 손가락이 미간을 꾹 눌렀다. 왜 이렇게 날카롭지. 단순히 잠을 방해당한 것 치고는 다른 느낌이다. 겨우 이틀 연속으로 이런 것 가지고 몸이 난리를 피워대니, 웃음이 비집고 나올 뻔했다. 묘한 상태를 눈치챈 것인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들자 아무 말 없이 긴토키를 바라보는 두 시선이 있었다.
"또 어느 길로 샌 건지. 골칫덩이들 찾으러 가야 하니까 얼른 나가봐."
"잠깐, 일단은 얘기한 대로 같이..."
따라오지 마. 뒤돈 채 나가려는 긴토키의 어깨를 잡으려던 히지카타의 손이 탁, 소리를 내며 저지되었다. 긴토키는 자신의 행동을 곧 이해하고는 아, 짧은 감탄사를 내보냈다. 차갑게 가라앉은 공기가 손바닥을 시리게 감싸는 듯한 느낌이 이렇게나 불쾌할 수가 없었다. ..오늘 왜 이러지. 바닥으로 치닫는 듯한 감각을 애써 무시하고 억지로나마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화답했다. 이건 말이지...그래, 긴상은 머리 뒤에도 제3의 눈이 있으니까. 그렇게 허술하게 남의 틈을 파고들어서는 이길 수 없다고? 아무튼 난 나가니까, 뭐 알아낸 거 있으면 다시 찾아오던지 하라고. 지금 이 공기마냥 식어버린 시선이 그들을 응시하는 듯 하다가 이내 거두어진다.
문을 열리고 닫힐 때까지 저도 모르게 선을 긋는 그의 일방적인 통보였다, 표현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을 손이 아려오는 것은 분명 제가 느끼는 감정이 아닐 것이었다. 왜 갑자기 그런 표정을 하게 되었는지 연유는 모르겠지만 순간이나마 위태로움을 느낀 건 분명 착각이 아니였겠지.
"나가자, 소고."
"꽤나 살벌하네요 형씨는."
입 다물고 따라오기나 해. 발 끝에 저미는 적막이 자신까지 삼켜버릴 듯, 기분 나쁘게 넘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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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와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에 찾아 뵙습니다. 뭐 어차피 매번 오랜만이라()
2. 원래 이번 해 안으로 뭐라도 한 편 써서 올리자 했는데 역시 시험은 다른 쪽으로 머리를 굴리게 만드는군요. 덕분에 뭔가 경의로운 속도로 다음편 하나를 뚝딱했습니다.
사실 요새 갑자기 은혼이 끌려서 클립으로나마 그때의 향수를 입력중입니다. 나중에 정주행해야지
3. 분량실패...는 아니구요 오랜만에 올린 김에 좀 더 쓸까? 하는 마음으로 쓰다가 분량실패를 해버린 모양입니다(같은게 아닌지)
4. 사실 이 뒤에 더 써야 두번째 날이 마무리가 되는데요 더 넣으려니 너무 길어지고, 그런데 下편이고 해서 지금 머리가 아프네요 어떻게 그럴듯하게 마무리짓지. 그리고 찾아온 下2편
5. 일단은 여기에만 올려놓을 예정이고, 다른 데는 음...시간이 널널해지면 올리려고 합니다. 12월아 얼른 가라이러다 까먹을 거 같으니 그냥 동시에 두개 다 올리기로 했습니다 빠른 판단력 훗.
6. 전편들이랑 뭔가 필체나 개그코드가 잘 맞았으면 좋겠는데,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