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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혼: 銀魂/[긴토키]N째 날

[은혼/긴토키]둘째날下 - 그 후

세인티피아 2020. 12. 20. 02:46

 바깥을 나서면서 생각했다. 불안했다고. 그랬다, 곤두선 신경 때문이라는 결론을 위안 삼아 넘어가려 했던 자신에게 분명 문제가 있었다. ..이런 감정 같은 거 평소엔 잘만 숨겨오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자신이 매사에 우울함으로 칭칭 감겨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잘 드러내고 싶지 않았을 뿐더러 굳이 보여봤자 어떤 반응을 기대한단 말인지. 그런데 오늘 딱 그것들에게 살짝 금이 간 것 같다. 거지같네. 다소 거친 표현이 입가에 맴돌았다. 귀 하나 안 들리는 걸로 왜 그러냐. 순전히 자신에게 묻는 질문이었다. 내일 또 다른 걸로 바뀔 텐데, 당장 앞이 안 보여서 생활을 못 하는 것보단 낫지 않냐고 그렇게 계속해서 되뇌고 되뇌었다. 자조적인 웃음이 제 얼굴을 붙잡고 현실로부터 고개를 억지로 돌리고 있었다.

 전쟁을 생각해 보라. 눈, 코, 입, 귀 모두 제 기능을 해도 그 혼란 속에서는 결국 아무 소용이 없었던. 적이든 아군이든 피인지 살점인지 모를 붉은 덩어리들에게 덮인 채 죽은 지도, 산 지도 모르는 존재들, 사방에 진동하는 피비린내, 이것은 과연 용맹한 외침일지 죽음에 다가선 자의 비명인지 모를 괴성이 그들의 입에서 붉게 쏟아져 나오며 들리는 모든 소리가 지옥이었다. 머릿속에 그때의 기억이 가득 차자 한순간 귀에서 붉은 액체 한 움큼을 토해낸 듯한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저도 모르게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지만 애석하게도 손바닥에 묻어 나오는 것은 없었다. 후우,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은 골목 벽에 한숨과 함께 몸을 기댔다.

 아, 신파치랑 카구라 찾아야지. 쓸데없는 생각으로 몇 분이 지나갈 동안 애초에 바깥으로 발걸음을 한 목적을 잊을 뻔했다. 지나칠 뻔한 그때의 당고 가게에 들러 아이들에 대해서 물어보니 조금 전에 다녀가긴 한 모양이었다. 볼일도 끝났는데 어딜 간 거냐, 녀석들은. 이어지는 대화의 중간에 어색함을 눈치챈 듯한 주인은 넌지시 그에게 물었으나 돌아오는 것은 스피커를 크게 틀은 채 자서 귀가 먹먹하다는 식의 둘러댐이었다. 그를 흘깃 바라보던 주인은 늦은 아침 어디 날아갈세라 그의 손을 꼭 붙잡고 있던 두 아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내가 봐온 게 얼만데. 더 이상의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아까 저 쪽으로 갔어. 한 마디를 제외하곤. 

 "알려줘서 고마워 주인ㅈ─ 아." 말이 끝맺기도 전에 몸이 기우는 것을 느꼈다. 뭐에 부딪힌 거지? 대처할 새도 없이 땅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충격으로 정신이 흔들리는 듯했다. 머릿속에서 종이 울리듯 충격이 그를 뒤흔드는 것을 애써 무시하고 고개를 들자 보이는 건 건장한 사내와 동료로 보이는 자들이 끊임없이 저를 향해 무언가 말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충격의 여파인 건지, 지친 건지 지금의 집중력으로는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를 구분하는 것은 고사하고 입모양으로조차 지금 저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저 녀석들, 요근래 긴상을 귀찮게 하고 있는 놈들이잖아. 설마 저거, 맥락 파악조차 할 수 없게 쉬지 않고 수다하는 전법이라도 쓰고 있는 거냐.  평소에는 상대도 안 할 버러지들인데 오늘따라 왜 이리 인내심을 흔들어 놓는지. 그래도 카부키쵸 주민들이라는 이유로 몇 번이나 넘어가 줬던 이들이었다.─평소에는 그렇게나 물고 뜯으면서 정작 위험하다 싶으면 주민을 해하여도 되는 거냐며 명분들 들먹이는 모습이 얼마나 추해 보였는지 모른다.─한 번 제대로 어울려 줘?


 "최근에 재정 때문에 고막이라도 팔으셨나? 아니면 무시하는 거냐, 앙?"


 오늘따라 비실해 보이는 게 진짜 어디 하나 팔아먹고 온 모양인데? 값은 제대로 쳐 주던? 큭큭큭. 명백한 조롱의 의미를 담은 말들이 비웃음이란 형태로 펴져나갔다. 사실 무슨 말을 하는지 내용을 파악할 수는 없었으나 저 저, 뚫린 입이라고 말 하는 것 좀 보게, 란 말이 안 떠오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표정만 봐도 명백하거든? 누가 봐도 '저 오늘 막 나갑니다, 막 나가주겠습니다.' 선언하고 있는 거 아냐? 오늘 따라 왜 이러는데. 두려울 게 없는 빽이라도 생긴 거?(직감이 틀리길 바랐다.) 한결같은 무표정에서 다양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을 무시하고 있다고 느낀 것인지 남자는 여전히 말 없이 자신을 응시하는 그의 턱을 한 손으로 우악스레 잡아 좌우로 천천히 흔들었다.  

 상태가 말이 아닌가 본데, 해결사 나으리. 그러게 적당히 좀 평소에 날뛰어 주었으면 좋았잖아. 그러니까 그 꼴 나...아니지, 아무튼 꼴 좋게 됐수다. 그러다 문득 그의 고개가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곤 작게 달싹이는 입술에 더욱 의기양양해진 남자는 한껏 비웃음을 띄운 채 손바닥을 귀에 가져다 대며 과장된 몸짓으로 고개를 숙인 긴토키 가까이 다가갔다. 그렇게 개미 같은 목소리로 말해서야 귀에 들어오지는 않는데 말이야~


"─"
"허 참, 적어도 큭, 좀 들리게 말 해보라고."
"그래. 웅얼웅얼, 네놈 말 하나도 안 들린다 인마-!"


 순간의 발돋움에 추진력을 실은 몸은 이마와 안면이 닿았을 때 그 힘을 발휘했다. 누군가의 고통 어린 소리인지, 부서지는 소리인지, 아니면 인내심이라는 줄이 끊어지는 소리인지 짧은 순간 일어난 상황에 모두가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으아악! 이번에는 남자가 바닥으로 벌러덩 넘어가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봐봐 쓸데없이 엄살은 심해가지고. 덕분에 긴상은 더 머리가 울려 죽겠거든? 이 더러운 기분을 아냐고. 그리고 귀 안 들리는 거 맞으니까, 니들이 아무리 뭐라고 말해도 말이지. 대미지 0 이라고 이것들아.


"아이고 저것들 또 난리네. 긴상 괜찮아?"
 "별로. 꼬맹이들도 도착했을 거 같고, 이만 돌아가 볼게."


 아까 부딪혀서 넘어질 때 팸플릿 부순 건 미안했수. 대금은 해결사에다가 달아놔- 일을 더 크게 키우고 싶지 않아(이미 꽤나 많은 구경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상대가 뭐라고 말하는지 신경 쓸 새도 없이 적당히 대답하고선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왔다. 조금 둘러 가는 한이 있더라도 오늘은 더 이상 누구하고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지나고 지나면서 머리울림은 심해졌지만 이상하게도 흩트려졌던 생각들이 조금씩 자리 잡는 것을 느꼈다. 오늘은 편하게 하루를 보내고 싶었는데 이 모양이냐.  또 보나 마나 집에 들어가면 잔소리도 분명 들어야 할 텐데. 아니지 애초에 둘이서 안 와서 긴상이 마중하러 나간 거잖아. 아 몰라 몰라. 

어느새 스낵바 옆의 골목까지 왔다. 이젠 더 이상의 트러블이 없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들어가기도 전에 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퍼질러 자고 싶다, 그런 기분을 느꼈다. 골목을 빠져나가 거리로 나가는 것마저 귀찮아질 정도로 무게를 더하는 피로는 지금 눈 앞에 드리워진 땅바닥에 눕더라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아늑해 보였다고 누가 들었으면 제정신이 아닌 표정을 지었겠지. 그래, 지금 제 앞에 서 있는 둘 처럼 말이다.

 긴상, 왜 여기 계세요. 얼마나 찾았는데요. 큰일 났다, 목소리가 깔려있다고! 동시에 긴상 인생까지 저 밑으로 깔리는 장면이 스쳐 지나갔어! 분명 이 긴상은 오히려 너희들을 찾으러 갔단 말이다, 요 녀석들아. 저거 분명 어디 갔냐는 둥 그런 내용이겠지. 긴짱 어디 아프냐, 해? 얼굴이 다시마 초절임 색 같다. '어랍쇼, 그건 또 무슨 색이래. 긴상의 뽀얀 얼굴을 그런 취급 하지 말아줄래, 카구라.' 라고 대답할 정도로 그는 그들을 살필 여력이 안 되는 상태였다.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엔 너무 지쳤으니까. 시선이 방금 전까지 그렇게 바랐던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피로함과 답답함, 그리고 미안함을 담은 한숨이 무겁게 바닥에 내려앉았다. 

"...가자." 자초지종은 모두 잘라낸 채 한 마디를 툭 내던졌다. 숙인 고개 저편으로 아이들의 시선이 잠시 머물렀지만 아무 말 없이 그에게도 다가와 오른팔은 카구라의 어깨에, 왼팔은 신파치의 어깨에 둘러졌다. 그들의 어깨에 축 늘어지는 무게가 쏠렸지만 흔들리는 일은 없었다. 무슨 일인지는 내일 들을 테니까요. 오늘은 푹 쉬는 거다. 어제처럼의 불평은 안 받아줄 거다, 해. 맞아요, 이번에는 강제 숙면이라도 하게 할 거예요.


 지금의 상태라서 오히려 다행이었다고. 자신의 탓을 하기도 전에 양 옆에서 느껴지는 체온에 안도감을 느껴버린 뒤였다. 이럴 때는 든든한 걸. 그 뒤로는 어떻게 되었는지, 제대로 2층에 올라가기라도 한 건지. 지금쯤이면 방 안에 누워 있을지도 모르고. 버티던 정신이 이렇게나 흐트러진 이유라 함은 세금 도둑들이 이리저리 귀찮게 해서도 아니고 웬 버러지가 시비를 걸어서도 아니다. 오히려 이 녀석들 덕분에 내가 붙잡았던 예민함을 결국 놓아줄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내일 일어나자마자 양 옆에서 잔소리를 가득 받아내게 생겼군. 이럴 때는 누가 과연 진짜 엄마인지, 자신도 헷갈릴 때가 있었다. 그래도 긴상에게 엄마가 둘이나 생기는 건 사양이라고? 고개를 들어 어느새 캄캄해진 하늘을 눈에 담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말할 수 있을까?
 "너는──." 이제는 제 자신이 말해오는 목소리까지 못 듣게 된 모양이다. 그래, 안 듣는 게 오히려 속 편하지. 스스로 내는 호흡소리마저 조용히 가라앉히고 흔들리는 감정을 추스른 뒤 적막이라는 평화가 찾아올 때, 비로소 희망이라는 두 아이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잘 자." 말 할 수가 없어서 못내 아쉬웠던 심정을 지금이 되어서야 조심스레 내려놓고자 했다. 걱정으로 밤을 지새웠을 너희들에게는 결국 잠든 뒤에서야 이렇게 말을 꺼내는구나. 항상 늦는 긴상을 용서해주지 않으련?

창백한 흰 달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그러나 어떤 달콤한 이끌림도 지금의 그에겐 다 소용없는 짓을 테니.









셋째날上 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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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드디어 둘째날이 마무리 되었습니다...지금 모든 게 끝나고 자유를 만끽하는 자기자신의 자각을 위해서 글을 후다닥 써 보았습니다. 저도 굉장히 빨리 다음편으로 돌아와 놀랍네요. 일단은 분량 실패의 보충이라....바로 전편의 下편이 좀 길었습니다...

2. 날이 마무리 되는 날에는 나름 1차적인 복선을 넣어보는데요, 첫째날下도 보면 달을 매개로 해서 복선을 넣었다만은...참 단순하다 못해...

3. 글 분위기가 왜 이러나요. 문단은 또 왜 이리 길죠. 원래 저는 시리어스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동안 은혼의 드립력에 묻혀 있다가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드립을 잃지는 않을 예정이니 실망하지 마세요.

4. 그래도 말이죠, 분명 제가 생각한 둘째날은 이런 어두운 느낌이 아니였는데...정신 안 차리면 어느새 시리어스로 빠져있답니다.

5. 내용은 전체적으로 썰을 따라갑니다만은 약간의 변화가 아마도 있을 예정입니다. 뭐가 달라지냐구요? 그건 글을 쓰는 미래의 제게 물어 보세요. 저도 모릅니다! (당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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